일기Video Signal
Video Signal
열아홉부터 스물 여섯까지 엘지 디스플레이에서 품질 검사 일을 했다. 어두운 암막에서 하루 8시간씩 컨베이어 벨트 위로 지나가는 TV와 monitor의 화면을 켜고 패턴 검사를 통해 불량현상을 찾아내는 일이다. 패턴 제너레이터 장비에 일일이 케이블이 연결된 디스플레이들이 줄줄이 지나가면 비디오 영상 출력 신호를 보내고 신호가 정상적으로 화면에 송출 되는 지를 직접 디스플레이 장비의 출력 화면으로 검사한다. 말만 들어도 지루한 이 일을 하며 실제로 많이 졸았다. 아무리 크게 음악을 틀어두고 일해도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하루에 300~500개의 디스플레이를 검사하면 적어도 몇 천 번 패턴을 반복적으로 보게 된다. 이런 말이 좀 그렇지만 이 작업을 반복하면 뇌가 바보가 되는 느낌이 든다. 모델명에 따라 바이어에 따라 패턴의 개수나 이미지는 달랐고 품질에 따라 등급도 달랐다. A급부터 폐기까지 다양한 등급의 디스플레이를 불량명을 달아 매겨 판정하는 것은 건조하고 지루한 일이다. 그러고 어떻게 7년을 일했을까. 그것은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빛의 3원색으로 이루어진 밝은 형광감은 어두운 암막 안에서 번쩍 대며 나의 시각과 뇌를 자극했다.
Gray, RGB, White, Black, Gradation, Flicker 등 화면을 조정하고 검사하는 영상은 빛의 색으로 자극적이고 직선적이며 기계적이다.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라 잊고 사는 줄 알았는데 종이에 먹을 묻히는 그림과 글씨를 하면서도 그 기억이 뇌리에 박혀 무의식중에 그것을 섞어 작업하고 있는 내가 신기하면서 우습다.
어둡고 캄캄한 암막 안에서 쉼없이 밀려드는 빛나는 밝은 색들. 그것은 나의 오랜 과거이자 삶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