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일기1>
2021/10/14~

숙소는 37st. West. 아침에 일어나 길에 나가니 전날 무슨일이 있었는지 쓰레기에 악취에 개판이다. 출근 시간인데 마약에 취한 몇몇이 길에서 구걸을 하고 마약에 찌든 상태로 길바닥에 널브러져있다. 어떤 사람은 편의점에 들어갈 때 문을 열어주더니 나갈때 돈을 내놓으라 손을 들이민다. 잘 차려입은 패셔니스타 멋쟁이와 마약에 찌들어 널브러진 거렁뱅이를 초단위로 같은 거리에서 마주하게 된다.
쇼핑을 마치고 나온 신호등 앞에서는 머리카락이 산발에 뒤엉킨 덩치큰 여자가 먹을걸 사달라고 따라온다. 타임즈스퀘어 전광판이 가득한 시내 곳곳에는 한국이 보인다. 기아 현대차가 보이고 파리바게뜨며 삼성 광고 엘지 전광판 kpop 매장까지. 한국의 존재감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져 잠시 국뽕에 취했다.
길에 선 할랄트럭에서 치킨 자이로도 먹어봤다. 인상은 촌스럽다. 길마다 흔하게 연두색 할랄트럭이 있다. 인도식 난에 갓 볶은 따뜻하고 풍부한 재료도 좋고 간도 잘 맞고 길에서 팔 뿐이지 훌륭한 요리다. WHOLE FOOD MARKET의 신선한 과일과 야채 건강한 식료품들을 만끽했다. 가득히 장을 보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아쉬울 뿐이다. 인상 깊었던 건 오트밀 음료와 비건 식료품의 다양함이다. 나는 고기를 먹지않는 사람은 아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비건 식품을 가까이 한다. 뉴욕의 비건들은 참 행복할 것 같다. 더불어 로컬식품의 신선함을 강조한 식품들의 배치나 디자인이 참 세련됐다고 느꼈다.
뉴욕의 지하철역은 최소한의 것만 갖춘 듯하게 일부러 공사를 의도한 느낌의 터프한 인테리어 같았다. 노출된 H빔들과 곳곳의 헬베티카 안내 표시는 아메리칸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줌 찌렁내가 나고 노후한 느낌이다. 역설적으로 한국 지하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걸 몸소 깨달았다.
점심 시간 전 센트럴파크의 여유로움과 쾌적함이 산책을 값지게 했다. 눈부신 초록잔디와 그 위를 노니는 청솔모. 레깅스차림의 러너들 손잡고 산책하는 노부부 단란한 아이들 원반 던지는 아저씨들의 호탕한 웃음과 몸짓. 돗자리 깔고 햇빛 만끽하는 이 모든 장면이 마치 영화같다. 센트럴 파크를 기준으로 Upper East Side. 이 구역의 모든 사람들과 가게들은 확실히 숙소쪽 37st.과 대비되는 고급진 상류층 느낌이다. 차림새나 표정이 여유롭고 무엇보다 잘 관리된 건강함이 느껴진다. NOGLU 비건빵은 미국식 베이킹이 얼마나 간결하고 심플한지 보여준다. 포슬포슬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의 캐럿 케익과 초코 케익은 정석처럼 느껴졌고 최고였다. 한국에서 먹던것보다 조금 더 드라이하다. 가격은 한국의 두 배고. 스타벅스는 언제나처럼 한결같고 오랜 친구처럼 편안했다. 커피를 마시는 따뜻한 첫 모금의 순간은 언제나 좋다. 쭉 걷다가 구운 닭고기와 오믈렛 요리를 브런치로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별 거 없는 접시 하나에 치킨자이로(chicken gyro) 하나 먹을 8배의 달러 몇 장이 오간다.

상점들도 정갈하고 기분좋은 디자인들이 눈에 띈다. 공기도 맑고 곳곳에 주차된 유모차에는 윤기 나는 금발에 파란눈동자를 가진 아가들이 생글거리고 있다. 헌데 가만보니 아기들은 모두 백인인데 곁을 지키는 여자들은 모두 동양인이거나 흑인이다. 아마도 보모겠지. 동양인은 눈에 띄게 없다. 백 명 정도 지나가면 한 두명 볼까 말까한 수준이다. 써클라인 크루즈 타러 Pier83 항구에 왔다. 기다리는 동안 베이컨과 계란을 넣은 시나몬 베이글에 스타벅스 커피로 아침을 해결했다. 벤치에 앉아 강변으로 에어팟 꽂고 레깅스에 달리기 하는 눈동자와 머리색이 다른 건강한 여자들을 구경했다. 리듬감 있게 달리는 모습 아름답다. 써클라인 Best of NYC 투어 (2.5 시간)
뉴욕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크루즈 어퍼웨스트사이드 미드타운에서 시작해서 다운타운을 지나 업타운으로 돌아볼 수 있다. 출출해서 나초를 시켰는데 치즈를 디핑소스로 주는게 아니라 나초위에 범벅으로 덕지덕지 뿌려주더라. 짜갑고 꾸덕한 나초. 뉴욕은 여러모로 상남자(?) 스타일 같다. 크루즈에서 밖을 내다보는데 비행기가 지나간다. 그런데 HAPPY JIMINDAY 라고 써있어서 검색해보니 오늘 BTS 지민 생일이었다. 뉴욕 하늘에서 축하하는 그의 생일. 경이로운 광경이다. Brooklyn은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다. 빨간 벽돌과 가까운 지하철. 브루클린 브릿지와 DUMBO. 저멀리 보이는 불빛과 낭만적인 분위기는 지금까지 중 가장 좋았다.

<뉴욕 일기2>

밤에 무서워서 일찍 자버릇 했더니 눈뜨면 새벽 세시 네시다. 일정을 정리하고 맥북으로 처리할 것들을 하고나니 아침이 온다. 밖에 나가니 아침은 분주하고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서 색이 예쁜 하늘이 빛난다. 아침을 먹으려 주변을 둘러보니 어떤 한 가게에 유독 NYPD 경찰들이 몰려있다. 이름은 Bakery Factory. 들어가보니 베이글도 팔고 국수에 밥에 별 게 다 있다. 한국 과자들은 아예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한국과자가 맛있긴 하지. 브루잉 커피 한잔에 거의 튀기다시피 구워낸 딱딱하게 씹히는 베이글과 스크램블 에그 샌드위치를 먹었다. 이곳은 경찰들이 가는 김밥천국같은 느낌인가 한국의 기사식당 같기도 하고 아무쪼록 든든하고 따뜻한 아침이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왠 흑인들이 삿대질을 하면서 아주 공격적인 말을 퍼붓는다. 맞서려다가 아 맞다 여긴 뉴욕이지 하고 속으로만 아주 쌍욕을 했다. 유독 37st.에서 흔하게 기분 나쁜 일들을 겪게된다.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 가니 분위기가 완전 딴 판이다. 오큘러스의 지하철역은 확실히 아름답고 깨끗하다. 밖은 아름다운 물가와 공원이 빛난다. 느낀점은 공원이 존재하는 동네는 참 살기 좋은 예쁜 분위기라는 것. 건강하게 달리는 사람들 썬탠하고 잔디에 누워 자고 시선 아랑곳 않고 필라테스 요가 하거나 물가에서 파티를 연다. 공원의 사람들이 어쩌면 내가 생각한 뉴욕이었다. 공원 바로 옆 놀이터에는 깔깔 거리면서 아장아장 볼이 통통하게 부푼 눈이 동그랗고 머리털이 아주 여린 아가들이 맨발로 물놀이에 방방 뛰며 논다.


911 메모리얼 파크와 기념관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어릴적 뉴스에서만 접했던 사건을 근거리에서 실제 현장에서 보게되니 몰입되는 감정과 정서에 한참 내려앉았다. 특히 희생자들 유가족이 설계하고 지었다는 이름이 새겨진 돌 밑으로 물이 떨어지는 구조의 공원은 슬픈 눈물 폭포 같았다. 전체적으로 기념관에서의 경험과 동선이나 짜임이 정말 완벽하다고 느꼈다. 브룩필드 플레이스 2층에서 마시는 쥬스와 커피 뉴저지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뉴욕에서 눈에 담을 수 있는 큰 사치였다.
<뉴욕 일기3>

차츰 뉴욕에 적응하는 중이다. 자연스럽게 구글맵을 켜고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 참 좋은 세상. 뉴욕의 70%는 마스크를 안 끼고 다닌다. 우리는 사진 찍을 때 잠시 빼고는 계속 낀다. 붐비는 사람들은 생기 있고 활력을 찾은 느낌.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소를 기준으로 메모한 일정을 정리했다.
1. 틱톡 Tick Tock
네온사인 간판이 미국스럽달까. 약간 우리나라로 치면 20년 된 김치찌개집 같은 원조 로컬 메뉴 식당 느낌. 내부 인테리어도 빨갛고 앤디워홀 팝아트 같은 찐한 미국 느낌이다. 맛이나 메뉴 구성도 브런치의 정석같은 느낌. 창밖으로 관람하는 만족스러운 뉴욕의 풍경 값이 포함된 식사 가격은 아침 한끼치고 호사스럽다. 큼직하고 통통한 새우가 들어간 아보카도 샐러드와 스크램블 에그와 소시지를 곁들인 모닝 플레이트. 역시나 모든 재료는 풍족하고 가득하다.
2. 하이라인 파크
철길따라 잘 조성된 정원이 인상적. 홀푸드 마켓에 들러 어니스트 우롱티를 사 마시면서 걸었다. 길을 잘못들어 한 시간 정도 헤맸는데 그러면서 공원을 더 누렸다. 공원에 조성된 모든 소재들은 내밀하고 견고해서 고급진 느낌이다. 각 부분들의 연결이나 접합 등의 마감도 완벽하다. 다른 이야기지만 뉴욕은 생수병 뚜껑도 소재나 디테일이 감동스럽다. 뚜껑값이 물값보다 비쌀것 같은 느낌이랄까. 심지어는 일회용 쇼핑백 손잡이도 우리나라 에코백 수준의 마감과 두께감을 갖는다. 이런 작은 요소에서 국력을 느낀다. 원자재의 수급이나 공급 자체적인 수요를 따져보게 된다. 공원에 설치된 나무 벤치 하나도 자재나 철근의 재질 때깔이 다르다. 이래서 미국 미국 하나보다. 공중에 떠있는 철길을 따라 걷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다. 정원은 관리인들에 의해 아직 계속 만들어지는 중이다. 잘 섞인 라벤더와 허브들이 마치 모네가 그린 그림처럼 심어지고 있다. 색감과 모양이 아주 조화롭고 아름다운 예술. (피트 아우돌프의 가드닝) 차갑고 단단하게 느껴지는 철길과 따뜻하고 여리게 느껴지는 풀길이 대비되고 지상에 떠있는 공원은 도시를 배경으로 입체적인 구조라 걷는 내내 기분이 들뜬다.
3.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전 세계에 여섯개밖에 없다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에 줄 서고 삼십분 정도 기다려 입장했다. 마치 커피 박물관이자 놀이공원 같은 흥미로운 곳곳의 장치들이 즐겁다. 천장에는 원두를 운반하는 배관 같은 것들이 연결되어 있고 신선하게 커피가 로스팅되고 내려지는 모든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굿즈로 산 리저브 에코백의 마감이나 질이 아주 좋다.
4. 첼시 마켓
어디선가 경험한 듯 익숙한 것은 한국에 비슷하게 만든 아울렛이나 공간이 많아서겠지 빨간벽돌로 누렇게 자유롭게 상점들이 모여있다. 그 중 랍스터 플레이스에 들어가 라지사이즈 랍스터와 클램차우더 한그릇을 같이 곁들여 먹었다. 오동통하고 쫄깃한 속살에 풍미 좋은 클램차우더 한스푼에 그 자리에 누울뻔. 또 먹고 싶다.

5. 휘트니뮤지엄
휘트니 컬렉션이 있는 뮤지엄. 볼드한 헬베티카를 간격 좁게 배치한 타이포그라피, 미술관 내부의 모든것은 블랙앤 화이트로 디자인 되어있는 절대 실패할 수 없는 궁극의 모던함. 제스퍼 존슨의 Mind/Mirror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림들은 자유롭고 인상적이다. 인상이 오래 남는다. 미국스럽다. 나도 막 붓을 들고 싶어진다.
6. 소호 (Soho)
여기에 내가 머릿속에 그린 멋쟁이 뉴요커들이 다 밀집되어 있다. 비율 좋은 뉴요커들의 패션 스테이지. 갑자기 오징어가 된 느낌에 자괴감이 절로든다. 길쭉 길쭉 큼직 시원한 그들의 스타일. 반해버렸다. 흑인은 흑인대로 진짜 섹시하고 마치 무슨 여신상 같고 백인은 백인대로 우아하고 세련된 디테일이 있는 룩을 보여준다. 그냥 잡지 사 볼 필요가 없달까. 길에 잡지 지면들이 걸어다니고 널려있다. 스티브매든 (Steve Madden)에서 롱부츠를 하나 샀다. 신을 때마다 뉴욕의 소호거리가 생각나 즐겁겠지.

7. 롬바르디스 피자집
뉴욕의 3대 피자집 중 하나인 곳. 마르게리따를 시켜 브루클린 라거와 먹었다. 긴 시간 거의 극기 훈련 강도의 걷기와 일정으로 피곤했던 터라 맥주 한 잔에 몸이 녹았다. 피자는 그냥 나 뉴욕피자야 라고 말하는 느낌. 맛있는데 그냥 숙소 앞에 1달러 조각피자도 맛있다. 미국와서 뱃속에 피자만 두판 들어간 것 같다.
8. Blick Art Materials
뮤지엄에서 캔버스와 물감 붓칠을 감상해서인지 미국의 화방도 꼭 가보고 싶었다. 역시나 개미지옥. 온갖 용품을의 퀄리티는 최고 수준이다. 이것 저것 고르다보니 아침에 가지고 나온 달러가 바닥났다. 신용카드를 추가로 쓰고 주머니를 털어 종이와 물감 그리고 붓을 샀다. 쇼핑에 먹을거리에 양손 가득 들고 지하철. 마치 뉴욕에 이민 온 한국인 부부 체험(?)을 하는 기분이다.
신혼여행인데 배낭여행(?) 이민체험(?) 차별체험(!) 부동산 투어(?) 그냥 뉴욕에 진짜 살아보는 느낌이다. 이쯤되니 남편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우린 휴양지가서 늙은이처럼 누워있지 말고 뉴욕에 가자! "라고 했던 나의 말에 백신 증명서 PCR검사 여권 재발급에 결혼 준비 하면서 이 시기에 뉴욕 여행까지 준비 하느라 죽을 고비 겨우 넘겼는데(?) 그는 지쳐 자고 나는 매일 조금 일찍 깨서 이렇게 일기를 쓴다. 우리는 일정을 보내고 매일 숙소에서 씻고 나면 쓰러져 정신을 잃는다. 그가 남긴 한 마디 "나 몸이 안 움직여 전신 마비 온 것 같아.." 신혼 여행와서 매일 전신이 마비되는 극기 훈련중인 우리. 많이 걷다보니 기름진 피자나 스테이크를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있다. 내일은 우버를 타봐야겠다. 왠만하면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대여해 타볼 요량이다. 아무튼 덕분에 재밌고 유익하고 즐겁다. 스펙타클하고 다양한 뉴욕. 함께와서 정말 좋다. 잘 온 것 같아.
<뉴욕 일기4>

정말 하루하루 그림같은 날씨 영화같은 풍경이다. 축복받은 미국땅을 몸소 경험하는 나날들이 꿈만 같다. 주말의 뉴욕은 코로나가 언제 휩쓸었냐는듯이 인파로 붐비고 가게마다 테라스는 바글거린다. 사람들은 줄지어 그동안 갖지 못했던 일상의 풍요와 즐거움을 만끽한다. 뉴욕의 하늘은 왠지 더 높고 누렇고 밝고 화사한 느낌.
1. 윌리엄스 커피
딸기 넣은 팬케이크에 스크램블 에그 메이플 시럽을 가득 뿌려 먹으니 달달한 향과 촉촉한 맛에 엔돌핀이 솟는다. 그릭요거트는 꾸덕하고 맛있다. 파르페 스타일로 나오는데 촌스럽고 손 여기저기에 묻어 불편하다. 역시 요거트볼 스타일이 좋다. 분위기는 올드하지만 맛은 좋았다. 주말 아침 미국인들이 바글바글하다.
2. Van Leeuwen Ice Cream
너네가 입이 있다면 우리 아이스크림이 맛 없을 수 없어. 라고 유리문에 적혀있다. 자신감 무엇. 나는 비건 피스타치오로 한 스쿱 5달러짜리 짝꿍은 클래식 바닐라 초코로 두 스쿱 7달러 짜리로 시켰다. 내가 고른 것은 역시 건강한 맛이다. 난 부드럽고 꾸덕한 그릭요거트 질감을 좋아하는데 아이스크림은 약간 포슬하다. 버터가 덜 들어갔거나 첨가물을 제외해서겠지. 옆을 보니 맛있다며 후루룩 금새 콘까지 씹어먹고 없다. 나도 다음엔 클래식 먹을래.
3.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THE MET)
다 보지도 못했다. 정말 많은 그림과 예술품들 보물들을 보고 있자니 미국이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나라의 역사는 240년이 조금 넘지만 몇 천 년의 문명을 지닌 세계의 귀한 보물들은 죄다 제 나라 박물관에 쟁여 놓고 전세계 사람들을 구경오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집트는 당연히 신기했다. 처음 보는 미이라에 나는 한참 앞에서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유럽의 페인팅은 매혹적이고 그 오묘한 표정들은 온화했으며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 같아 등골이 오싹하다. 현대 미술은 색감과 배치 기법과 형태가 지금 미국 디자인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의외로 생각보다 일본 컬렉션이 굉장히 우수하다고 느꼈다. 정갈하고 차분한데 뚜렷하달까. 특별전은 생각만큼 좋았고 한국의 컬렉션은 고려청자와 조선 백자정도 인정 받는 느낌이라 존재감은 크지 않다. 한 번 더 가봐도 될 듯한 규모와 범위다. 미국이 미국하는 곳이다.
4. 쉐이크쉑
강남 가면 자주 먹는데 진짜 미국 본토에서 먹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미국 본토 재료로 만들어서 인가 빵의 식감과 소고기 패티의 기름지고 잘 익은 조합이 코로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시즈널 메뉴인지 메뉴판에는 없는 블랙 트러플 싱글 버거를 주문해서 먹어봤는데 세상에나 이런 맛이 있다니 원래도 트러플 향을 좋아해 여기저기 곁들여 먹길 좋아하는데 이게 쉐이크쉑을 만나니 천상의 맛이다. 앞을 보니 짝꿍은 입에 흰 소스를 가득 묻히고 버거를 흡입중이다. 뮤지엄 투어가 진짜 힘들다. 허리도 다리도 아프고 머릿속에 본 것들도 집어넣는 공부도 해야하니 스마트폰으로 비유하자면 배터리 5%정도 남기고 쉐이크쉑에 들어가서 30%정도 충전해서 나온 느낌이었다. 분명 버거 하나씩 시키고 프라이감자에 치킨 조각을 시켰는데 지킨 조각 대신 치킨 버거가 나왔다(?) 어쩌겠나 싶어 사이좋게 반 갈라 버거 반 쪽씩 더 나눠먹었다. 치킨 버거는 좀 별로다. 역시 미국은 소고기. 아 배불러.
5. DSW(Designer Shoe Ware House)
디자이너 슈즈 편집샵. 호텔 가는 길에 몇 번 마주친 곳. 엄청난 폭으로 세일중이다. 내 사이즈는 7이다. 한국 사이즈로는 240. 7코너에서 신발을 자유롭게 내 집 드레스룸처럼 신나게 신어봤다. 누가 옆에 없고 혼자 신어보고 거울보는 피팅 방식 아주 좋다. 여기서 신발을 무려 세 켤레나 샀다. 전에 눈여겨 봤던 슬링백이랑 메리제인 슈즈에 운동화까지 알차고 저렴하게 겟 했다. 캐리어에 자리가 남았을지 모르겠다. 남편은 튼튼한 가죽 벨트를 같은 걸로 두 개 샀다. 여러모로 재밌게 디자이너 슈즈 감상 했고 저렴하게 현지 할인 쇼핑까지! 이런 때에 개이득이라고 말하지!
6. ZARA
한국에서도 자라에 자주 가는데 미국 자라도 궁금해서 가봤다 정~말 사람이 제일 많았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내 사이즈가 XS 와 S라서 제일 많이 남아있다는 것. 개인적으로 느낌이나 디스플레이 매장의 무드는 서울이 더 좋았다. 역시 전세계 자라에는 내놓으라는 패션 피플들이 다 모이는 느낌. 사람들 구경이 제일 재밌다.
7. Ubereats
도저히 밥먹으러 나갈 체력과 배터리가 부족해서 (정말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상태.ㅋㅋㅋ) 우버이츠로 근처 한식당에 김치볶음밥와 김치찌개 갈비구이를 배달 주문했다. 배달비가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싸다. 졸린 상태에서 오랜만에 한식을 먹었더니 반가웠다. 결제 방법이나 시스템은 배달의 민족이랑 거의 흡사해서 어려움 없다. 세상 참 편하다.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노랗고 얇은 머리카락에 핀을 꽂은 어린이가 수줍게 몸을 베베꼬며 인사를 건넨다. 코로나로 오랜만에 여행과 외출이라 신나고 들떠 보였다. 자기 몸에 맞는 핑크색 인형 그림이 그러진 슈트케이스를 연신 자랑하며 뽐내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문을 잡아주고 길을 알려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 커피 한 잔을 시켜도 안부를 묻는다. 날씨만큼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들. 하루를 꼬박 쓰고 편안하게 눕는 호텔방 침대 매트리스의 푹신함과 침구의 포근함이 환상이다. 한국 가서 이거랑 같은걸로 사고싶은데 프론트에 물어보면 알려주려나.
<뉴욕 일기5>

Brooklyn DUMBO
Brooklyn Williamsberg
오늘은 브루클린 위주로 다녔다. 다리 밑에서 펼쳐지는 개성 강한 갤러리와 다양한 상점들. 마치 서울 성수동이나 홍대 이태원을 합쳐놓은 느낌이다. 물가가 빛나고 하늘이 열린 이 도시에서 다리 밑이건 굴 아래건 언덕배기건 무슨 상관이 있을까. 모든 곳엔 문화와 개성 존중되는 방식들이 있다.
1. Blank street cafe
야외에 차려진 카페가 어디선가 본 화보컷 같다. 햇살을 가득히 맞으며 커피 첫 모금 하는 순간은 무엇도 이기기 힘들다.
2. 브루클린 플리마켓 (Brooklyn Flea)
마치 가정집에서 쏟아져 나온듯한 입던 옷가지 신발 장신구들이 길거리에 차려져있다. 정말 벼룩시장 그 자체다. 가죽 공예 하는 사람 명품 구제 파는 사람 차 번호 판 파는 사람 별의 별 사람들이 다리 밑에서 무언가를 판다. 특별한 구경거리들이 많았다. 약간 낡은 홍콩 다자이너 브랜드의 트렌치 코트를 입어봤다. 백화점인줄. 가격은 120달러 정도.

3. 브루클린 브릿지
다리를 걷는 내내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게 된다. 이곳이 뉴욕이구나. 다리의 사람들은 마치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순환하는 느낌을 준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아래의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클래식하다.
4. 그리말디스 피자 (Grimaldi's Pizza)
뉴욕의 3대 피자 중 두 곳을 먹었다. 다른 한 곳은 이 집 바로 옆집인데 여기서 일하던 사람이 나가서 차린 집이라고 하니 사실상 다 먹어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거짓없이 정말 뉴욕에서 먹어본 피자 중 단연 최고의 맛. 마르게리따에 바질과 토마토의 조합은 그냥 오케스트라 수준의 어울림이다. 별 다섯 개 줄 수 있다.
5. NYC 페리 (NYC Ferry)를 타고 덤보에서 윌리엄스버그로.
페리에서 내렸는데 마술사 모자를 쓰고 구렛나루를 기른 재미난 아저씨가 있다. 몇 걸음 가니 또 마술사가 있어서 옆 짝꿍에게 "이 동네에서 마술쇼 하나봐~" 마술사가 많네 했더니 저건 마술사가 아니라 랍비라고 설명해준다.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초정통파 유대교인들이라 저렇게 모자며 구렛나루며 정장을 입고 다닌다고. 나 너무 무식한것 같아 하니까 괜찮다고 모를수도 있다고 자기가 아니까 설명해주면 된다고 말하는 천사같은 짝꿍아 고마워.
6. 버틀러 Butler
라떼를 주문했다 오틀리로 바꿔서. 고소하고 따뜻한 맛. 분위기가 자유롭고 글루텐 프리 비건 베이커리도 좋았다. 해질 무렵 한참 시간을 보냈다.
7. 윌리엄스버그
성수동 길거리와 많이 닮은 윌리엄스버그. 작고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컬러풀하고 다양해서 걷는 내내 이벤트다. 이태원 같기도 하고 홍대 같기도 하고. 모자 가게에 들러 모자도 써보고 거리 곳곳에 묻어나는 그들만의 느낌들을 관찰했다. 흑인이 맞아주는 일식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조리하는 곳에는 일본인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밥알을 쥐고 만들고 있길래 기대했는데 메뉴판에 써진 스페셜 초밥이라는 이름이 기분 나쁜 맛이다. 지나다 우연히 들어가도 맛있는 집이면 좋겠는데 그런집은 드물다. 잘 검색해서 맛집을 다녀야지.

8. BIRDLAND
라라랜드의 한 장면 같은 재즈바. 연주하는 사람도 즐기는 관객도 하나의 문화다. 독주가 이어지면 휘슬을 불고 연신 호응하는 사람들. 순간의 무대를 즐기면서 흥겹게 불고 치고 두드리는 연주자들. 음악 리듬에 맞춰 테이블에 놓인 파라핀 양초의 불꽃이 춤을 춘다. 이 모든 그림이 감독 없고 NG 없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치킨윙에 브루클린 라거는 기분좋은 안주. 앉아서 먹는 식당에 갈 때마다 빳빳하고 하얀 냅킨을 주는데 그게 참 편하고 좋다. 세탁하는 비용이나 시간도 가격에 포함 되겠지. 어딘가에서 본 듯한 매무새로 새침하게 입가를 닦는 내 모습이 자연스러워져 우스웠다. 나오는 길에 굿즈 몇 가지를 샀다. 이 시간이 오래 기억될 진짜 기념품. 굿즈는 그 자체의 퀄리티는 사실 기본적인 요소고 이 시간과 장소를 얼마나 기념하고 싶은지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BIRDLAND가 쓰여진 머그컵을 보며 집에서도 뭘 마실때마다 뉴욕 재즈바의 시간이 떠올라 뿌듯하겠지. 무르익은 시간과 아늑한 공간, 이 모든 추억을 함께 공유하는 옆자리 짝꿍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하늘과 날씨는 어디든 같겠지만 뉴욕의 하늘과 날씨가 유독 더 빛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잘 계획된 건축과 디자인, 곳곳의 풍요로운 공원 덕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널찍한 스카이라인은 잘 그린 그림 같고. 각각의 모양이 아름다운 빌딩들은 창에 빛을 반사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곳곳의 사이니지는 소재와 형태가 아름답고 간결하며 지나다니는 버스마저 그림의 한 부분같다. 물길이 펼쳐지는 곳에는 언제나 반짝이는 윤슬이 풍경에 윤기를 더한다. 일상의 풍요와 여유를 누릴 공원과 마켓. 다양한 취향과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음식과 음악 그리고 미술. 멋과 맛이 있고 눈과 귀가 즐거운 이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지금 신혼여행 왔다. 여긴 뉴욕이다.
<뉴욕 일기6>

뉴욕에서 선물하는 한글. 타임즈스퀘어 중심에서 캘리그라피 퍼포먼스!
한복을 입고 뉴욕 거리를 거닐었다. 짝꿍과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 싶어 사진 찍으러 나갔는데 왠걸 지나는 사람들마다 연신 칭찬에 따뜻한 미소로 사진을 찍자고 Beautiful! Wonderful! 감탄사 하며 신기한 듯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서성인다. 이쯤 되니 뉴욕까지 왔는데 한복 입고 글씨 한 점 남기고 가야지 생각이 든다. 타임즈스퀘어 계단 앞 전광판 아래에서 짝꿍에게 말했다. "여기서 퍼포먼스 하면 의미있고 재밌을 것 같아!" 아무 대답 없었지만 구글맵에 화구용품점을 검색하고 있는 천사같은 짝꿍. 사진만 찍으려다 갑작스레 하게 되어 현지에서 재료를 구하다 보니 조금 어설픈 구성이 되었지만 그래도 갖출 것은 다 갖췄다. 붓과 먹물 종이를 사서 그대로 광장으로 나갔다. 종이를 깔고 를 적었다. 정사각의 네모를 그리자마자 스퀴드 게임! 이라고 알아보며 즐거워 하는 광장의 사람들.
갑자기 뉴욕 한복판에서 무얼 쓸까 생각하다 전광판에 광고중인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이미지를 보고 한글의 형태를 구성하는 도형 요소로 네모 세모 동그라미를 화면에 풀었다.
밑에는 자음을 순서대로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 적었다.
미음과 시옷 이응 자리에 그대로 도형을 넣어 표현했다.
그리고 알아보지는 못하겠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를 붓에 먹물 묻혀 진하게 적었다. 꽃분홍 한복을 입고 간 내가 쓴 글씨 옆에 살포시 앉았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즐거운 관람과 시선을 즐겼다. 퍼포먼스를 마치고 광장 벤치에 앉아 구경하던 사람들의 이름을 묻고 한글로 써서 선물해줬다. 너무나 기뻐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국가도 얼굴도 모두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이름은 있다. 한글로 써준 자신들의 이름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즉흥으로 했지만 의지가 있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되는 삶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런 삶을 만들고 짓고 살 것이다.

<마지막 뉴욕일기>
2021/10/21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뉴욕일기의 마지막 편을 쓴다. 기내식으로 나온 본죽이라는 글자가 적힌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부탁해 프레첼과 함께 곁들이며 조커 영화를 보면서 꿈 같던 뉴욕에서의 일정들을 정리하고 떠올려본다.
1. 카페 그레이스 (한인 운영 델리)
10일차 쯤 되니까 얼큰하고 칼칼한 한국음식이 엄청 땡긴다. 한인 여주인이 운영하는 집이라 반가운 마음에 순두부 찌개를 시켰는데 결국 다 먹지 못했다. 한국의 식재료가 아니고 양념도 달라 이도저도 아닌 짬뽕탕 맛이다. 미국에서는 피자나 햄버거가 주식이라 실패 없고 가성비도 좋다. 벤또나 스시집은 시내에 드문드문 자주 보이고 깔끔하다. 메트로폴리탄에 자리한 일본의 작품 수와 한국의 작품수에 비례하는 음식점의 비율이 무척 정확해 놀랍다.

2. MoMA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고 좋았던 곳을 묻는다면 단연 하이라인 파크와 모마다. 메트로폴리탄과 휘트니도 좋았지만 뉴욕 현대미술관의 모던하고 현대적인 무드와 컬렉션 그리고 디자인 스토어는 강렬했고 영감을 주는 무지개 같다. 공간 자체가 주는 담백한 세련됨, 기획전과 곳곳에 익숙한 명작들은 오감을 깨우는 촉진제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이다.
몬드리안의 선과 면, 피카소의 입체, 모네의 정원, 마티스의 컷아웃, 클림트의 금색, 고흐의 붓칠 이 모든 것을 실제하는 원본의 형태로 만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미국에 온 왕복 비행기 티켓 값이 아깝지 않았다.

3. MoMA 디자인스토어
빈티지 조명들과 모마 컬렉션 작품 도록들. 곳곳의 아메리칸 스타일의 쨍한 색감과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디자인이 전시만큼 흥미롭다. 영감을 주는 큐브 형태의 질감이 다른 돌멩이 일곱 개를 샀다.
4. 딤섬팰리스
이틀 연속 딤섬팰리스의 쉬림프 딤섬을 먹었다. 정말 맛있다. 미국의 새우는 살알이 탱탱하고 쫄깃하다. 타임즈 스퀘어 퍼포먼스 후 짝꿍이랑 호텔에서 브루클린 라거와 저녁 만찬으로 먹었던 이 집의 북경오리도 참 맛있었다.

5. 록펠러센터 전망대 (탑오브더락, Top of the Rock)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야경은 고요했다. 10일동안 우리가 함께 다녔던 뉴욕 곳곳의 지형지물과 장소들이 한눈에 담겨 불빛과 함께 낭만적으로 여행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센트럴파크 쪽만 불이 어두워 까맣게 직사각 지형이 보였다. 마주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함께 눈에 담고 사진을 남겼다.
언제 다시 갈지 모르는 이 곳의 추억들을 아이폰에 꽉꽉 채워 뿌듯하게 담아간다. 옆자리에 목베게를 끼고 잠든 짝꿍의 옆모습이 무척 고맙고 소중하다. 함께 했던 시간과 공간 냄새와 공기를 기억하며 틈틈이 떠올리고 생각하고 싶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게 될 앞으로의 삶을 한 편의 여행으로 영화처럼 압축해서 경험한 느낌이 든다. 앞으로 어떤 일이 우릴 기다릴지 어떤 미래를 마주할지 알 수 없으나 우리가 겪었던 여행처럼 함께 즐겁거나 곤란하거나 지쳐도 손잡고 걸었듯 기분 좋고 다채로운 그림이 되었으면.
벌써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지 생각한다. 여행을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 힘든 이유를 알겠다. 열흘 간 옆자리 짝꿍과 함께 뉴욕이라는 끝내주게 재밌는 책을 읽은 기분이다.
어디라도 좋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 우리.
<마지막 뉴욕일기>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뉴욕일기의 마지막 편을 쓴다. 기내식으로 나온 본죽이라는 글자가 적힌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부탁해 프레첼과 함께 곁들이며 조커 영화를 보면서 꿈 같던 뉴욕에서의 일정들을 정리하고 떠올려본다.
1. 카페 그레이스 (한인 운영 델리)
10일차 쯤 되니까 얼큰하고 칼칼한 한국음식이 엄청 땡긴다. 한인 여주인이 운영하는 집이라 반가운 마음에 순두부 찌개를 시켰는데 결국 다 먹지 못했다. 한국의 식재료가 아니고 양념도 달라 이도저도 아닌 짬뽕탕 맛이다. 미국에서는 피자나 햄버거가 주식이라 실패 없고 가성비도 좋다. 벤또나 스시집은 시내에 드문드문 자주 보이고 깔끔하다. 메트로폴리탄에 자리한 일본의 작품 수와 한국의 작품수에 비례하는 음식점의 비율이 무척 정확해 놀랍다.
2. MoMA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고 좋았던 곳을 묻는다면 단연 하이라인 파크와 모마다. 메트로폴리탄과 휘트니도 좋았지만 뉴욕 현대미술관의 모던하고 현대적인 무드와 컬렉션 그리고 디자인 스토어는 강렬했고 영감을 주는 무지개 같다. 공간 자체가 주는 담백한 세련됨, 기획전과 곳곳에 익숙한 명작들은 오감을 깨우는 촉진제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이다.
몬드리안의 선과 면, 피카소의 입체, 모네의 정원, 마티스의 컷아웃, 클림트의 금색, 고흐의 붓칠 이 모든 것을 실제하는 원본의 형태로 만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미국에 온 왕복 비행기 티켓 값이 아깝지 않았다.
3. MoMA 디자인스토어
빈티지 조명들과 모마 컬렉션 작품 도록들. 곳곳의 아메리칸 스타일의 쨍한 색감과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디자인이 전시만큼 흥미롭다. 영감을 주는 큐브 형태의 질감이 다른 돌멩이 일곱 개를 샀다.
4. 딤섬팰리스
이틀 연속 딤섬팰리스의 쉬림프 딤섬을 먹었다. 정말 맛있다. 미국의 새우는 살알이 탱탱하고 쫄깃하다. 타임즈 스퀘어 퍼포먼스 후 짝꿍이랑 호텔에서 브루클린 라거와 저녁 만찬으로 먹었던 이 집의 북경오리도 참 맛있었다.
5. 록펠러센터 전망대 (탑오브더락, Top of the Rock)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야경은 고요했다. 10일동안 우리가 함께 다녔던 뉴욕 곳곳의 지형지물과 장소들이 한눈에 담겨 불빛과 함께 낭만적으로 여행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센트럴파크 쪽만 불이 어두워 까맣게 직사각 지형이 보였다. 마주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함께 눈에 담고 사진을 남겼다.
언제 다시 갈지 모르는 이 곳의 추억들을 아이폰에 꽉꽉 채워 뿌듯하게 담아간다. 옆자리에 목베게를 끼고 잠든 짝꿍의 옆모습이 무척 고맙고 소중하다. 함께 했던 시간과 공간 냄새와 공기를 기억하며 틈틈이 떠올리고 생각하고 싶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게 될 앞으로의 삶을 한 편의 여행으로 영화처럼 압축해서 경험한 느낌이 든다. 앞으로 어떤 일이 우릴 기다릴지 어떤 미래를 마주할지 알 수 없으나 우리가 겪었던 여행처럼 함께 즐겁거나 곤란하거나 지쳐도 손잡고 걸었듯 기분 좋고 다채로운 그림이 되었으면.
벌써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지 생각한다. 여행을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 힘든 이유를 알겠다. 열흘 간 옆자리 짝꿍과 함께 뉴욕이라는 끝내주게 재밌는 책을 읽은 기분이다.
어디라도 좋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 우리.
출처 : 김소영 페이스북
2021/10/14~

숙소는 37st. West. 아침에 일어나 길에 나가니 전날 무슨일이 있었는지 쓰레기에 악취에 개판이다. 출근 시간인데 마약에 취한 몇몇이 길에서 구걸을 하고 마약에 찌든 상태로 길바닥에 널브러져있다. 어떤 사람은 편의점에 들어갈 때 문을 열어주더니 나갈때 돈을 내놓으라 손을 들이민다. 잘 차려입은 패셔니스타 멋쟁이와 마약에 찌들어 널브러진 거렁뱅이를 초단위로 같은 거리에서 마주하게 된다.
쇼핑을 마치고 나온 신호등 앞에서는 머리카락이 산발에 뒤엉킨 덩치큰 여자가 먹을걸 사달라고 따라온다. 타임즈스퀘어 전광판이 가득한 시내 곳곳에는 한국이 보인다. 기아 현대차가 보이고 파리바게뜨며 삼성 광고 엘지 전광판 kpop 매장까지. 한국의 존재감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져 잠시 국뽕에 취했다.
길에 선 할랄트럭에서 치킨 자이로도 먹어봤다. 인상은 촌스럽다. 길마다 흔하게 연두색 할랄트럭이 있다. 인도식 난에 갓 볶은 따뜻하고 풍부한 재료도 좋고 간도 잘 맞고 길에서 팔 뿐이지 훌륭한 요리다. WHOLE FOOD MARKET의 신선한 과일과 야채 건강한 식료품들을 만끽했다. 가득히 장을 보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아쉬울 뿐이다. 인상 깊었던 건 오트밀 음료와 비건 식료품의 다양함이다. 나는 고기를 먹지않는 사람은 아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비건 식품을 가까이 한다. 뉴욕의 비건들은 참 행복할 것 같다. 더불어 로컬식품의 신선함을 강조한 식품들의 배치나 디자인이 참 세련됐다고 느꼈다.
2021/10/21
출처 : 김소영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