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거제도 지평집



<지평집>


숙소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었다.



드넓은 바다. 고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낮고 평평하게 묻어놓은 듯 비밀스러운 공간, 거제 ‘지평집‘



해 뜨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아름다운 풍경이 창 안에 담겨 그림처럼 보인다.



파묻혀있는 집에서 바라보는 거제의 가을은 낯설고도 익숙하다. 갈대가 흔들리는 바다 위로 행선지를 알 수 없는 배들이 지나간다.



지평집의 군더더기 없는 구조는 단순하며 강렬하다. 공간에 자리한 가구들은 간결하고 담백하다. 콘크리트와 나무만이 드러난다.



은은한 쑥 향이 감도는 화장실엔 손 세정제부터 샴푸 보디 샤워까지 이솝의 것으로 줄지어 가지런하다. 재밌는 것은 통창으로 외부에서 화장실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는 것이다. 구조상 바깥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묘한 스릴이 있다. 



바닥부터 수전까지 돌로 되어있고 안내 문구는 모두 각인된 나무로 되어있다. 전체적인 디자인의 통일감과 디테일이 좋다. 다만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콘센트나 조명의 위치 동선이 친절한 것은 아니다. 



입구에 자리한 콘크리트 벽에는 거칠게 뚫어 긁어내어 누군가의 손으로 담고 심었을 흙과 작은 나무가 보인다. 인공의 재료에 이질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어 신비롭다.



이곳에 이틀간 머물면서 하루키의 신작을 다 읽었다. 사실 나는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다. 이번 신작을 읽고 나니 그 사실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왜인지 어떠한 상상보다 실제의 감정과 사건을 더 흥미롭게 여기게 된다.



사실 이곳은 책을 읽기에 좋은 공간은 아닌 것 같다. 편안한 의자와 테이블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공간 그 자체는 편리하거나 친절하지 않지만 침구와 매트리스, 따뜻한 실내, 제공되는 조식과 웰컴 티는 만족스럽다.



색다르고 낯선 느낌이라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면 묵어보라 권하고 싶다.